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여기 한 시인이 있다.
그는 일제 식민 통치기 중후반기의 조선 문단을 배경으로 활동을 하다가 분단을 겪으며 문학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심한 교란을 겪게 된다. 당시 모든 문학인이 그러했듯이 그 또한 정치적 판단과 선택이라는 가파른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청년 시절 수년간 서울 문단에서 활동했던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만주 일대를 유랑민처럼 떠돌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부유적(浮游的) 삶을 살았다. 그러한 와중에서 해방이 되었고, 조국은 정치적 이념과 지향을 달리하는 두 체제로 분단되었다. 그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 한반도의 관서 지역이었다. 시인의 부모 형제와 일가친척 모두가 고향 부근에서 살았다. 시인 또한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면서 고향 가까이서 살고 싶었을 것이다. 굳이 서울로 월남해 내려올 만한 어떤 정치적 신념이나 노선이 별도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해방 이후 북쪽에 수립되었던 공산주의 정권 치하에서 그는 한 사람의 주민으로서 당시 사회의 중심권으로 진입하지 않고 비교적 온건하고 소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가 한때 거주했던 한반도의 남쪽 지역에서는 완전히 잊힌 시인이 되었다. 우리는 이를 일러 문학사에서의 매몰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다가 1987년 서울에서 분단 시기까지의 그의 작품을 모은 시 전집이 발간되었다. 이후로 그는 남한의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인으로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그의 이름은 백석(白石, 1912∼1995)이다.
이제는 백석 시인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백석은 인기 시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 오죽하면 젊은 시인들조차도 문학 수업기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받았던 시인의 한 사람으로 단연 백석을 일컬을 정도로 백석 문학의 감화력과 영향력은 이미 객관적 검증을 받은 상태다.
백석의 시는 시간이 지나도 그 특유의 신선함과 발랄함, 그윽함과 도란거림의 예술적 음영과 세력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특이한 효과로 점차 확장되어 간다. 이러한 확장과 보편화가 주는 놀라움의 근원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오로지 백석 문학이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민족적 전통성이라는 가치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서양 문학(영문학)을 전공했거나 혹은 강의를 들었던 시인들이 대개 서양 문학의 방법론이나 그 분위기에 심취해서 단순 추종자나 그 에피고넨이 되기가 십상인데 한국 문학사에서는 특이한 세 시인이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김소월, 정지용, 백석이다. 서양 문학을 공부한 경험을 가졌으면서도 오히려 그들은 민족의 전통이라는 후미진 뒷골목으로 돌아들었던 것이다.
일본 아오야마학원 영문과에 재학하며 영미 문학에 관한 지식과 교양을 충분히 습득했던 백석이 어떻게 민족적 전통이라는 가치관 쪽으로 확연히 돌아앉아 시 창작의 중요 테마로 떠올리며 애착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인가? 백석의 시는 모더니즘을 통해 창작 방법론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모더니즘이 지닌 한계와 제한성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방법으로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작업은 식민지 자본주의가 드러내고 있던 여러 부정적 파괴적 징후를 시인이 매우 침통한 표정으로 응시하며 고뇌하는 활동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백석의 문학 세계가 나타내는 전통성의 다양한 갈래와 그 의미에 대해 낱낱이 점검하고 확인해 보면 시인 백석이 식민지라는 정치적 문화적 폐쇄 공간 속에서 문명과 반문명에 관한 시적 담론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작업에 몰두했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일관된 노력에 힘을 쏟은 것이 당시 시인이 품고 있었던 일정한 비평적 의도의 반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명과 반문명이라는 대립항에서 일제가 그토록 자부심과 우월감을 가졌던 문명이야말로 가장 극단적이고 전형적인 반문명이었다는 사실을 백석 시인은 강조하고자 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인의 문화적 전통이야말로 상대적 제국주의문화를 압도하고 진정한 문명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길이었음을 시인은 작품을 통해 역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자평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이 땅에 왔다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타고 멀리 떠나간 시인이 있다.
평북의 명문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유학, 아오야마학원에서 영어사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는가 하면 미션 스쿨에서 영어를 가르친 초 엘리트.
그러나 그가 택한 길은 서구주의도, 모더니즘도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도 토속적이고 소박한 ‘우리’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읊은 백석. 구수한 할머니 이야기 같은 그리운 기억을 일깨우는 그의 시를 초판본 표기 그대로 만난다.
지은이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白夔行)]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이다.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이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었다. 이 작품에서 백석이란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조선일보 장학생으로 뽑혀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도쿄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영문과를 다녔고 1934년에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입사해 계열 잡지 ≪조광≫, ≪여성≫ 등의 편집을 맡았다. 1935년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했다. 1936년에는 첫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하고 문단의 벗들과 서울 태서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1936년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고보 교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1938년 교직을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와 조선일보에 복직했다. 1939년 식민지조선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당시 만주제국의 수도 신징(新京)으로 이주했다. 1940년 토마스 하디의 장편 소설 ≪테쓰≫의 번역 출판을 위해 서울에 잠시 다녀갔다. 1941년 만주에서는 측량 보조원, 소작인 생활, 세관 업무를 보는 관리 등에 종사했고 북방의 여러 지역을 떠돌았다. 1945년 일제 패망과 더불어 고향으로 돌아와 한때 과수원 관리인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평양에서 고당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했다. 김일성정권 수립 후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 제4차 중앙위원회 외국문학 분과원으로 일했고 김일성대학에도 출강했다. 1949년 러시아 작가 숄로호프의 방대한 장편소설 ≪고요한 돈≫을 백석 특유의 문체로 번역 출판했다. 1956년 아동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창작에 몰두하며 여러 편의 아동문학 평론을 발표했다. 평양 ≪문학신문≫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발간했다. 1959년 평양 문단에서 숙청되어 삼수군 관평리의 협동농장으로 내려가 이후 36년 동안 양치기 일에 종사했다. 1962년 북한 문단에서의 복고주의 비판에 연루되어 모든 창작활동을 중지하고 산골에서 가족들과 조용하게 살다가 1995년 83세로 사망했다. 1987년 분단 이후 최초로 서울에서 ≪백석 시 전집≫(이동순 편, 창작과비평사)이 출간되었고, 이 책은 백석 연구의 기점이 되었다.
엮은이
이동순(李東洵)은 1950년 경북 김천 출생이다. 경북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1973)와 문학평론(1989)으로 당선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문과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며, 평론집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의식≫,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우리 시의 얼굴 찾기≫, ≪달고 맛있는 비평≫ 등을 발간했다. 분단시대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에 뜻을 두고 ≪백석 시 전집≫, ≪권환 시 전집≫, ≪조명암 시 전집≫, ≪이찬 시 전집≫, ≪조벽암 시 전집≫, ≪박세영 시 전집≫ 등을 잇따라 발간했고,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철조망 조국≫, ≪아름다운 순간≫, ≪발견의 기쁨≫ ≪묵호≫ 등 14권을 발간했다. 2003년 민족서사시 ≪홍범도≫(전5부작 10권)를 완간했으며 산문집 ≪시가 있는 미국 기행≫, ≪실크로드에서의 600시간≫, ≪번지 없는 주막 – 한국 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 등 각종 저서 50여 권을 발간했다. 신동엽창작기금,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차례
시집 ≪사슴≫ 이전 발표작
개
가마구
어린아이들
定州城
山地
酒幕
비
나와 지렝이
늙은 갈대의 獨白
여우난곬族
統營
힌 밤
古夜
시집 ≪사슴≫ 수록작
얼럭소 새끼의 영각
가즈랑집
여우난곬族
고방
모닥불
古夜
오리 망아지 토끼
돌덜구의 물
初冬日
夏畓
酒幕
寂境
未明界
城外
秋日山朝
曠原
힌 밤
노루
靑枾
山비
쓸쓸한 길
柘榴
머루밤
女僧
修羅
비
노루
국수당 넘어
절간의 소 이야기
統營
오금덩이라는 곧
枾崎의 바다
定州城
彰義門外
旌門村
여우난곬
三防
시집 ≪사슴≫ 이후 발표작
統營
오리
연자ㅅ간
黃日
湯藥
伊豆國湊街道
昌原道—南行詩抄 (一)
統營—南行詩抄 (二)
固城街道—南行詩抄 (三)
三千浦—南行詩抄 (四)
묘비명—咸州詩抄
北關—咸州詩抄 (一)
노루—咸州詩抄 (二)
古寺—咸州詩抄 (三)
膳友辭—咸州詩抄 (四)
山谷—咸州詩抄 (五)
바다
丹楓
秋夜一景
山宿—山中吟 (一)
饗樂—山中吟 (二)
夜半—山中吟 (三)
白樺—山中吟 (四)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
夕陽
故鄕
絶望
개
외가집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東海
三湖—물닭의 소리 (一)
物界里—물닭의 소리 (二)
大山洞—물닭의 소리 (三)
南鄕—물닭의 소리 (四)
夜雨小懷—물닭의 소리 (五)
꼴두기—물닭의 소리 (六)
가무래기의 樂
멧새 소리
박각시 오는 저녁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童尿賦
安東
咸南道安
球塲路—西行詩抄 (一)
北新—西行詩抄 (二)
八院—西行詩抄 (三)
月林장—西行詩抄 (四)
木具
수박씨, 호박씨
北方에서
許俊
아카시아
≪호박꽃 초롱≫ 序詩
歸農
국수
힌 바람벽이 있어
촌에서 온 아이
澡塘에서
杜甫나 李白같이
당나귀
나 취했노라
머리카락
山
적막강산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七月 백중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 方
분단 이후의 시
계월향 사당
등고지
제3인공위성
이른 봄
공무려인숙
갓나물
공동식당
축복
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
돈사의 불
눈
전별
천년이고 만년이고…
탑이 서는 거리
손’벽을 침은
돌아온 사람
석탄이 하는 말
강철 장수
사회주의 바다
조국의 바다여
나루터
분단 이후 동시 동화시
병아리 싸움
까치와 물까치
지게게네 네 형제
집게네 네 형제
쫓기달래
오징어와 검복
개구리네 한솥밥
귀머거리 너구리
산’골 총각
어리석은 메기
가재미와 넙치
나무 동무 일곱 동무
말똥굴이
배’군과 새 세 마리
준치 가시
메’돼지
강가루
기린
산양
오리들이 운다
송아지들은 이렇게 잡니다
앞산 꿩, 뒤’산 꿩
감자
우레기
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날인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시 문밖으로 쓸어 벌인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곧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벌이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설어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서진 곧으로 와서 아물걸인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올으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벌이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곻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벌이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맞나기나 했으면 좋으렸만 하고 슳버한다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단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피ㅅ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 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벌인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단닐 것과
내 손에는 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世上事’라도 들을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날여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여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 귀 혹은 능달 쪽 외따른 산녑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힌 김 속에 접시 귀 소기름 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볓 속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집웅에 마당에 우물 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싸히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에 그득히 살이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 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 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샅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枯淡하고 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힌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힌 바람벽에
히미한 十五 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 글은 다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힌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씿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서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힌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쨈’과 陶淵明과 ‘라이넬·마리아·릴케’가 그러하듯이